

지난 3월 중순, 모처럼 관악산 등반을 했다. 작년 11월 말, 지인들과 청계산 매봉을 오른 지 100여 일 만이다. 3년 전만 해도 등산을 자주 즐겼고, 겨울 산행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했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하산할 때 무릎에 통증이 와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날씨가 따뜻한 봄, 여름, 가을에는 10일에 한 번 정도 관악산이나 청계산을 올랐지만, 겨울에는 거의 등산을 하지 않게 되었다. 겨울에는 무릎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추운 날에는 밖에 나가기가 싫어서다.
꿩 대신 닭이라고, 겨울에는 등산 대신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에서 실내 운동을 했다. 주로 스트레칭, 팔굽혀펴기, 트레드밀에서 걷는 운동을 했다. 등산만큼 운동량은 되지 않지만, 골고루 운동하고 트레드밀에서 속도를 높여 걸으면 땀도 나기에 실내 운동도 할 만했다.
그래도 겨울 몇 개월 동안 등산을 하지 않았기에 갑갑했다. 등산한 날은 모처럼 날씨가 풀려 연주대를 오르려 했다. 나는 연주대를 올라갈 때 과천교회 야외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능선과 그 반대편의 케이블카 능선 코스를 번갈아 택한다. 능선 코스가 향교 계곡을 통해 올라가는 것보다 운동량이 더 많고, 등산 인원이 적어 한산하기 때문이다. 코스가 한적하다 보니 등산하며 사색하기도 좋다. 하산할 때는 계곡을 타고 향교로 내려온다.
과천교회 능선을 타고 14개 봉우리를 넘어 1시간 정도 올라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나는 주로 이곳에서 휴식을 하며 멀리 경마장과 서울대공원, 과천시를 바라본다. 등산한 날도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는데,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휑한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둘러보니 늘 있던 나무 몇 그루가 베어져 있었다. “그늘을 선사하던 소중한 나무인데 왜 베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의문을 뒤로하고 헬기장 봉우리에서 내려갔다. 봉우리에서 내려오면 바로 사거리가 나온다. 직진해 봉우리를 4개 더 넘으면 연주대, 좌측은 관악사지(冠岳寺址)를 거쳐 연주암, 우측은 사당으로 이어진다. 직진해 연주대로 가는 코스는 봉우리를 또 넘어야 하니 제일 힘들다. 연주대를 오르려 했으나 오랜만에 산행하는 것이기에 덜 힘든 연주암으로 가는 좌측 코스를 택했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니 곳곳에 소나무들이 벼락 맞은 듯이 꺾어져 있거나 뿌리가 뽑혀 쓰러져 있었다. 이번에는 의문이 아니라 괴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넘게 등산하면서 멀쩡한 많은 나무가 꺾이고 뿌리가 뽑힌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관악사지에서 연주암을 오르려다 또 마음이 바뀌어 “오랜만에 산에 왔으니 무리하지 말자” 생각하고 하산하기로 했다. 늘 연주대나 연주암까지 올랐다가 하산했기에 관악사지에서의 하산은 처음이었다. 관악사지는 677년 의상대사가 연주대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절터이다. 연주암과 과천시는 1999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관악사지를 발굴 조사했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2016년부터 2년에 걸쳐 승방, 누각, 공양간, 전각 등 4동의 건물을 복원했다.
관악사지 돌계단에 눈과 얼음이 쌓여 있어 조심조심 내려오다 보니 데크 계단이 나타났다. 관악사지를 복원하면서 이 계단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데크 계단을 내려오니 향교로 이어지는 관악산 계곡 등산로와 만났다.
관악산 계곡 등산로 주변에는 더 많은 소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어떤 나무는 등산로 계단 위로 쓰러졌고, 나무 주위에 있던 큰 돌들이 굴러떨어질 것처럼 위험해 보였다. 쓰러진 나무를 톱으로 잘라 정리해 놓은 것도 곳곳에 보였다.
과천시청 산림과에 관악산 나무가 쓰러진 원인에 관해 물어보았다. 담당 직원은 “작년 11월에 내린 폭설이 원인”이라 했다. 눈도 보통 눈이 아니라 습설(濕雪)이란다. 습설은 물기를 많이 품은 눈으로, 보통 눈보다 훨씬 무겁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습설의 무게에 꺾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은 “등산객 안전을 위해 등산로 주변에 쓰러진 나무를 우선 치우고 있지만, 워낙 쓰러진 나무가 많고 높은 곳까지 장비를 동원해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단한 소나무가 습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어진 것을 보니 “우리 사람도 때로는 이 같은 경우를 겪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근심, 걱정, 스트레스 등은 우리 인간에게 습설 같은 것이다. 지나친 근심과 걱정은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영어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녹이 쇠를 갉아먹듯이 근심은 마음을 갉아먹는다(As rust eats iron, so care eats the heart).”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몸과 마음을 해치는 근심, 걱정, 고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습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소나무를 보며, 조금이나마 삶의 지혜를 배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