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치우는 고마운 동네 아저씨. 주민들이 편히 걸을 수 있게 길을 만들었습니다. 사진=박종숙

눈이 소복히 많이 내린 날 입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에 눈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일찍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서니, 남편과 앞집 아저씨는 커다란 넉가레로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눈이 오면 보이는 풍경은 멋있지만, 미끄러운게 걱정입니다. 집앞 골목을 나와 넓은 길로 나왔습니다. 차가 지나간 바퀴자국을 따라 걸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곳은 인도가 따로 없어 차도로 걸어야 합니다.

평소에는 개울 옆 좁은 오솔길로 다니지만, 그날은 오솔길에 발자국이 하나도 없는걸 보니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듯 합니다. 새로 산 부츠가 젖을까 계속 차도로 걸어갑니다. 차가 빨리 달리며 범벅이 된 눈을 튕기고 갈까봐 조마조마 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인도가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인도에 올라 서려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반가왔습니다. 누군가 걸을 수 있을만큼 길을 내어 눈을 치운 것입니다. 누가 이른 아침에 지나는 이들을 위해 수고를 한건지 궁금했습니다. 이 궁금증은 오늘이 처음이 아닙니다. 전에도 눈이 올 때마다 눈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짧지 않은 긴 길을 치우는 이가 도대체 누구일까?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그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인도로 들어서서 조금 걸어 가니, 아래쪽에서 넉가래를 들고 오는 분이 있었습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유! 누가 눈을 치우나 했는데 아저씨였군요?”

그분은 미소를 지을 뿐 말없이 동네로 올라갔습니다. 나도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반짝 머리를 스치는게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 오려고 갖고 가던 핸드카를 길에 버려둔체 오던길을 되돌아 갔습니다.

그분은 아직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도에 있는 눈을 치우며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분위기로 보아 부인인 듯 합니다.

“저, 사진좀 찍으면 안될까요?”
“사진은 뭣 하러요”?
“아니, 좋은일 하시니까요.”

그분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응해 주었습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가던길을 갑니다. 기분이 구름 위를 걷는 듯 좋았습니다. 전에는 눈이 오면 동네 주민들이 으레 같이 눈을 치웠습니다. 서로 얘기도 하며 노동이 아닌 한바탕 놀이를 하듯 말입니다. 지금은 내집 앞 눈 치우는 일도 보기 힘듭니다.

요즘은 눈이 오면 염화칼슘을 뿌립니다. 그것도 아주 넉넉히 뿌려 눈이 녹고 며칠이 지나도 도로 군데군데 남아 있습니다. 어느날, 집으로 오는 길에 염화칼슘 한무더기가 뿌려져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눈이 온 것도 아닌데 왜 뿌려져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염화 칼슘은 눈이 빨리 녹는 장점은 있지만, 그것이 눈이나 비에 섞여 강이나 호수에 흘러들어가 수생 생물에 해를 끼치고, 금속이나 도로도 손상이 쉽게 된다고 합니다. 무더기로 뿌려진 염화칼슘을 오가며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도 그 주민이 눈을 치우지 않았다면, 많은 염화칼슘이 뿌려졌을 겁니다.

당장 편리하다는 이유로, 먼 훗날의 후환은 생각하지 않는 듯 합니다. 넘쳐나는 물자의 낭비, 쓰레기 등에 환경은 몸살을 앓은 지 오래된 듯 합니다.

과천에는 많은 봉사단체가 있습니다. 나도 그 단체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눈이 올 때 그 봉사자들이 눈을 치우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나아가 우리가 사는 환경에 대한 문제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나는 오늘도 그 주민이 치워놓은 길을 기분좋게 걸어갑니다. 마음 같아서는 표창장이라도 드리고 싶은데, 집을 알아두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