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등산로 옆에 쓰러저 있는 남녀 장승. 사진=전승민
쓰러진 장승과 관악산 계곡. 사진=전승민
남녀 장승. 사진=시사상식사전

과천 향교를 지나 관악산을 오르다 보면 초입에 장승이 서 있었다. 나무로 된 장승이었다. 기자는 이 장승을 수년 전 관악산을 등산할 때부터 보아왔다. 관악산을 오르내리며 볼 때마다 반갑고 신기했다. 보통 마을 입구에 서 있어야 할 장승을 산 입구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어느 날 보니 장승이 쓰러져 있었다. “곧 보수하겠지” 생각했는데 수개월간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

장승은 통상 남녀가 쌍을 이루어 서 있고, 남자는 관모를 쓰고, 여자는 안 쓰는데 관악산 등산로의 장승도 이와 같다. 그러나 통상의 장승과 달리 키가 크지 않고 치장도 요란하게 하지 않았다. 등산로 한쪽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서서 관악산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산객의 안전 산행과 관악산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 같았다.

기자는 처음에 과천시가 이 장승을 세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관악산 KBS 케이블카 인근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김지명 시인이 개인적으로 세운 것이었다. 김 시인을 찾아가 장승이 쓰러져 있다고 얘기하니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동안의 사연을 얘기했다. “죽은 나무를 방치하는 것보다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장승을 만들어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20여 년 전에 본인이 설치한 것”이라며, “그러나 장승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장승을 일부러 쓰러뜨린다”고 했다. 그리고 “쓰러져있을 때마다 일으켜 세웠는데, 이제는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엄격한 이슬람 규율로 무장한 반군 단체)이 1997년 정권을 잡은 후 불상 등 귀중한 불교 유적을 우상이라며 대대적으로 파괴한 사건이 떠올랐는데 기자의 지나친 생각일까?

장승(長丞)은 통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이나 석상을 가리킨다. 마을의 수호신이나 지역 간 경계표 등의 역할을 했다. 장생(長栍), 후(堠)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장승에 대한 기록으로는 전남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의 비명에 신라 경덕왕 18년인 759년의 장생표주에 대한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 그 뒤의 기록으로는 943년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청도(淸道) 운문사(雲門寺)의 장생(長生), 1085년(고려 의종 2년) 경남 양산 통도사국장생석표(通度寺國長生石標) 등이 있다.

장승이 수호신 역할을 한다는 것을 혹자는 미신으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신라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장승은 이미 우리의 전통문화가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조사하여 학계에 알려진 장승 유적지가 1999년 기준 전국적으로 540여 기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장승 유적지를 민족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리고 남녀 한 쌍의 장승은 공예품으로 만들어져 판매되기도 하는데, 이는 많은 사람이 장승을 친숙하게 생각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장승은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믿고 의지해 온 토속 신앙이다. 사람들을 혹세무민하거나 경제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도 없다. 오히려 나쁜 일을 예방한다는 정신적 안도감을 주는 순기능 역할을 한다.

과천 시민뿐만 아니라 많은 외지인이 과천 향교를 통해 관악산 연주대를 등산하고 있다. 쓰러져 방치된 장승을 보고 무관심한 등산객도 있겠지만, 우리의 전통문화가 훼손된 것 같아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여 기린다는 차원에서 장승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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