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취재=박종숙·이원호 기자] 선바위역을 뒤로 하고 뒷골로 들어가다 보면 고풍스런 ‘엘 올리보(El Olivo)’ 스페인 레스토랑이 있다. 그 레스토랑 대각선 맞은편, 선과 각으로 모던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풍기는 건물이 ‘K&L 뮤지엄’이다.
두 공간은 한 사람의 예술적 호기심과 열정이 맞물려 빚어진 과천의 숨은 자랑이다. 특히, ‘K&L 뮤지엄‘은 지난해 개관한 이래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진 격조 높은 전시와 공연을 통해 예술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 공간을 빚어낸 주인공이 ‘SMK인터네셔널‘ 김성민 회장이다. 김우중 회장이 한창 잘 나가던 시설, 대우에서 의류수출업에 뛰어들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것을 내보내고, 외국 것을 들여오면서 자연스럽게 문화교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교역이란 게 물건에 담긴 문화를 주고 받는 것이니 당연한 이치. 게다가 선화예중고를 나와 미국 시카고서 미술을 전공하는 딸의 영향도 컸다.
김 회장이 과천에 들어온 때는 한일월드컵 열기로 후끈했던 2002년. 20여년 과천에 살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뜻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K&L 뮤지엄은 그렇게 과천사람들 곁에 서게 됐다.
과천시니어신문이 5월 17일 오후 2~3시 K&L 뮤지엄 별관 사무실에서 김성민 회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Q. 갤러리를 세운 동기는?
A. 2002년 과천에 들어왔으니,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의류사업 30년, 스페인 레스토랑 13년을 운영하면서, 좀 더 뜻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고심 끝에 직접 기획하고 설계해 이 마을에 미술관을 짓게 됐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동안 진행 못 하다가, 2022년 4월 착공, 2023년 5월 1년여 만에 K&L 뮤지엄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미술 쪽에는 지식과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실은, 딸이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나와 미국 시카고 ‘SAIC'(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딸이 공부하는 시카고에 가서 미술 활동하는 것도 보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미술관에 대한 결심이 더 굳어졌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이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라는 부분에서 같은 맥락에 있고, 작가의 영감이 음악으로 표현되느냐 미술로 표현되느냐 그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늦게나마 예술을 사랑하게 됐고, K&L 뮤지엄은 음악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운영하는 미술관이 첫 번째 모토입니다. 저는 이제 환갑이 지나서 나이가 들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인 딸과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미술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음악과 예술이 함께 하는 공간을 갖는 게 이번 미술관을 열게 된 이유입니다. 그래서 피아노와 어쿠스틱도 비치하고, 나름대로 설계할 때 신경을 썼습니다. 그동안 몇 번의 음악회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의류수출 사업입니다. 대학 졸업 후 주식회사 대우에 들어갔는데, 당시 김우중 회장이 의류사업을 일으킬 때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의류사업부에서 일하게 된 것이, 지금 하는 사업의 밑받침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10년간 대우에서 배운 노하우로 1994년 창업하고, 지금까지 의류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IMF와 코로나 여파로 세계 경기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연간 3000만불 정도 수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재화를 외국으로 수출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유럽의 와인, 음식 등 그들의 문화를 한국으로 수입하고 있습니다. 재화와 문화가 교류하는 사업을 해온 셈이지요. 앞으로는, 우리 예술과 음악을 해외에 알리고, 해외 것을 한국에 알리는 예술의 무역, 이 세 가지를 중점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Q. 최근 전시한 작품은?
A. 지난해 5월 25일 개관해 소장전을 했습니다. 이어, 9월 초엔 헤르만 니치(Hermann Nitsch, 오스트리아 출신 전위예술가)라는 세계적 거장의 국내 최초 개관전을 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권오현 작가 전시도 올해 1월에 있었고요. 오는 9월에는 세계적인 클라우디아 콤테(Claudia Comte)라는 스위스 작가의 작품을 초대해 환경을 주제로 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미술관에서 좋은 전시를 많이 열어 일반 고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습니다.
A.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과천엔 선바위미술관, 제비울미술관, 가원미술관, 그리고 현대미술의 대표격인 국립현대미술관도 있습니다. 과천뿐만이 아니고, 서울이나 경기도에 많은 미술관들이 있습니다. 저의 취지는 그런 미술관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것보다, 아방가르드하고 컨템포러리하지만, 새로운 것을 전시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해하고 조금은 힘들 수 있는 그런 전시를 한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그러한 전시를 계속할 것이기는 하나, 반드시 그런 전시만 하지는 않겠습니다.
7월 5일부터 전시 예정인 퍼블릭 아트라는 아트 매거진과 협업해 한국에 있는 중진, 앞으로 한국의 미술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영웅들, 뉴 히어로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도 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예술과 문화 발전을 위한 국내외 작품과 작가들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이 과정에서 딸인 김진영 학예실장이 전문가로서 큐레이팅 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요즘은 백화점에도 아이들 놀이시설이 있어요. 미술관에도 그런 시설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A. 좋은 제안입니다. 현재 어린이들은 무료로 입장하고, 시민들에게는 할인 혜택을 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과천시민은 물론 가족과 어린이들이 많이 방문해 주기를 바랍니다. 유럽에서는 어린이들이 가족이나 선생님들과 손잡고 미술관에 와 바닥에 앉아 그림도 보고, 노트에 스케치도 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나라의 희망인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미술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이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회장님 부모님께서도 과천에 사셨죠?
A. 그렇습니다. 과천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제 셋째 동생 덕분입니다. 셋째 동생이 과천에서 오래 살았는데, 자랑을 많이 했습니다. 동생네 와서 사는 모습 보니까 주변 환경이 좋아 과천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제가 과천에 왔을 때만 해도 40대, 활발하게 해외출장을 다녔기 때문에 부모님을 뵐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천에 살고 계시던 부모님을 과천 뒷골에 모시게 됐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칠순이셨고, 어머님은 60대 중반이셨는데, 2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면서 지금은 두 분 모두 작고하셨습니다. 어머님은 5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그 후로 외롭게 계시다가 1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로서는 참으로 죄송하기 그지없는데, 좋은 환경에서 더 오래 사셨으면 어땠을까, 그런 아쉬움이 많습니다.
Q. 동네 경로당 어르신들을 위해 의류 선물은 물론, 운영하시는 엘 올리보 레스토랑 직원들이 직접 음식 대접한 걸로 아는데요.
A. 약소합니다. 과천에 와서 사업도 잘 됐고, 제 삶도 깊어졌습니다. 아버님께서 경로당에 다니셨고, 주변에 어려운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가졌던 것은 있었습니다만, 말씀드리기 참 송구합니다. 경로당 얘기가 나오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버님은 경로당에 오래 다니셨고, 친구분들도 많으셨는데, 가끔 찾아뵀던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 좀 더 그런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Q. 뒷골마을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A. 20년 넘게 과천에 살면서 전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졌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옆에 계시는 현석호 사장님이 제가 부재 시 마을을 위해 도울 사항이 있다면 최대한 도와주실 겁니다. 원로 대표님들과 통장, 자치회장 등 여러분들과 한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Q. 앞으로 계획은?
A. 사람이 인연이라는 게 매우 소중하고, 그런 인연으로 과천에 들어오게 됐는데,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 제 아들과 딸이 회사에서 문화사업과 제 사업을 맡아서 하나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길게 잡아야 10년일 것 같습니다. 항상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다음 세대에 올바르게 이 일들을 전수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이나 레스토랑을 찾아 오시는 분들에게, 사회공헌 차원에서 문화사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하는 일이 잘 돼야, 이런 사회사업과 문화사업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사업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미술관 운영과 관련해선, 가장 중요한 점이 어떤 작품을 전시하는가 입니다. 대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돼야 합니다. 운송, 보안, 보험 등 중요한 해결 과제가 많습니다.
오는 7월에 ‘뉴히어로’라는 한국의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해 선보일 계획입니다. 9월에는 서울에서 ‘키아프’, ‘프리즈’ 등 세계적인 아트축제가 열릴 예정입니다. 그 시기에 맞춰 세계에서 많은 아트관계자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중요한 전시를 많이 할 계획입니다. 다른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시 보다는, 새로운 장르를 보여드리는 게 저희 미술관 지향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