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대어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성품과 교양이 묻어난다. 반말은 억양에 따라서 가끔은 다정하게 들기기도 하지만 별로 호감을 얻지 못한다.
몇 년 전인데 우리 동네 내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다 느낀 일이다.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목소리를 낮추고 말끝에 ~어요를 사용하니 아이도 대답할 때 조용조용하게 ~어요를 따라 했다. 또 한 아이 엄마는 격한 어조로 안 돼, 이랬어, 저랬어, 하며 불친절하게 말을 건네니 아이도 시큰둥하게 들으며 안 해, 안 할 거야 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느꼈던 바가 많아서 그랬는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2시간 동안 갇혀있던 초등학생 구한 소방관’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멈춘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던 아이들을 구조한 소방관이 아이들에게 ‘나와’라고 반말한 언행에 대해 누리꾼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해당 영상은 SNS상에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소방관이 아이들에게 반말을 했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반말은 좀 그렇다’, ‘왜 반말이지?’, ‘일부러 갇힌 것도 아닌데 왜 기분 나쁜 어조로 말을 하나’, ‘아무리 애라도 반말은 아니지’ 등의 댓글들이 달렸다. 비판의 댓글을 단 사람들은 이런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 자신들은 언어 생활이 어떤지 반성할 일이다.
상대방에게 말을 건넬 때 끝에 ‘~요’라고 요자 하나만 더 한다면 반말이 아닌 상대방이 듣기에 무난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렇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우리말 속담처럼 우리는 늘 예의바르게 말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다. ‘말 한 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상대방에게 말을 건넬 때 얼마나 바른말 고운말을 쓰는지도 스스로 돌아보면 좋겠다.
위 동시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했어’ 보다 ‘했어요’ 가 말을 할 때도 부드럽고 들어도 기분 좋은 표현이다. 그것은 마치 맨바닥에도 요를 깔면 포근하고 폭신하듯이 평소의 언어생활에서도 요자 하나가 더 들어가면 부드러운 표현이 된다. 말할 때의 요와 바닥에 요를 깔면 폭신하다고 한 비유가 놀랍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언어가 부드럽고 자상할 때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전해지며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바른말 고운말은 우리의 생활을 아름답고 기품 있게 이끌어 준다.
가끔 느끼는 표현의 중요성을 푹신한 요를 꾸밈 으로 완성되는 요..이 요든,저 요든 요는 우리를 푹신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간결한 글.
근사합니다.
제가 가끔 지어보는 짧은 글 두어개 적어 봅니다
“다른 봄”
다시 봄
그래도 안 봄
“짝사랑 봄”
너는 나의 봄
너는 나를 안봄
말 한마디,글 한쪽에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참 좋겠지…..요..하.하.
혹독한 추위를 지나고 다시 온 봄에 찾아 온, 다른 봄을 다시 본다면 서로 볼 수 있으면
님의 말씀처럼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좋겠지요.ㅎㅎ
주옥같은 글 입니다. 시니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새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