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두 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하다. 과천시노인복지관이 과천시에 거주하는 시니어들에게만 분양하는 주말농장이 있다.

3월 중순에 신청을 받고 무작위로 추첨하여 분양을 한다. 우리 가족은 혹시나 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청하여 주말농장 주인이 됐다. 한 평 반 정도 되는 사각형 땅에 하얀 표지판에 이름표가 세워져 있었다. “내 땅이 생겼다”면서 남편은 콧노래를 불렀다. 1년은 내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기쁨으로 땅을 어루만지고 일궜다.

시골에서 자란 우리는 농사일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언제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지, 풀과 농작물의 구분은 할 수 있는 정도의 상식만 갖고 있었다. 옆 밭에는 무얼 심었는지 둘러보며, 일을 하고 있는 주말농장 주인에게 무슨 씨를 뿌리는지 묻고 배우며 신나게 다녔다.

상추, 쑥갓의 새싹이 나오는 걸 보면서 물을 주며 쓰다듬고 사랑을 쏟았다. 농사가 잘 돼 앞집, 윗집, 아랫집, 딸네, 사돈까지 “농약 안 친 거”라고 자랑하며 나눴다.

그러면서 가을이 돼 무, 배추를 심은 걸 다섯 살 외손주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밭을 찾았다. 이건 배추, 이건 무, 라며 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마침 길 건너 앞 밭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당근을 수확하고 있는 중이었다.

“민창아, 저기 보이는 게 당근이란다. 잎이 달린 건 처음 봤지. 잎은 초록색이고 땅 속에 있던 뿌리는 주황색이란다, 아가야 봤지.”

“응, 할머니 당근 예쁘다.”

돌아서려는데 “아가야, 예쁜 아가야, 이거 갖고 가아” 하면서 할아버지가 달려 와서 당근 두 개를 민창이 손에 쥐어 주셨다.

얼떨결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가야 인사 드려야지”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순간, 훗날 민창이와 당근을 주신 고마운 마음을 추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감사함이 물결을 이뤘다. ‘민창이와 둘이서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를 당근을 캐면서 들으셨나보다’ 오는 길에 나도 나누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더하게 됐다.

“민창아, 민창이도 친구와 나누면서 지내야 한단다.”

주말농장을 일구면서 흙의 고마움을 다시 알게 됐고,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 중이었다. 다섯 살 민창이에게도 나눔을 갖고 살아가기를 몸소 보여주시고 길 가는 나그네에게 정을 베풀어주신 그 노부부께도 내내 행복하시기를 빌었다. 요즘이 삭막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정은 뿌리에 남아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순수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오래오래 기억할 날이었다.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이야기다. 글을 쓰는 지금도 당근 두 개를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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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 기자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며, 2000년 아동문예문학상(동시부문)을 받고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빗방울 미끄럼틀' '키를 낮출 게' 등 10권을 출간했으며 초등국어교과서에 '키를 낮출 게' '늦게 피는 꽃' 중학교과서에 '풍차와 빙글바람'이 실렸다. 새벗문학상, 한국아동문예상, 아르코창작지원금, 경기문화재단지원금을 받았다. 2023년 7월부터 과천시니어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