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위버필드 아파트 35층 라운지에서 바라본 정부과천청사와 관악산 방면의 모습

과천시니어신문 창간을 기념, [나의 도시 과천 제대로 알아보기]를 연재합니다. 과천시 연혁 및 구성, 인구분포, 과천이 갖고 있는 공원이나 문화재, 가볼만한 곳, 과천 소재 행정관서나 기업체, 과천에서 오래 살아온 토박이들의 이야기, 과천의 2040비전 소개 등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과천시민들이 ‘나의 도시 과천’을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과천시 홈페이지 ‘과천소개’에 따르면, 우리 고을 명칭에 대한 역사상 첫 기록은 삼국시대인 고구려 장수왕(475년) 시기에 사용된 ‘율목군(栗木郡)’이다. 통일신라 경덕왕(757년) 때는 ‘율진군(栗津郡)’으로 바뀌었고, 고려의 초기(940년)에는 ‘과주(果州)’가 됐다.

조선 태종(1413년) 때에야 비로소 ‘과천’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과천현(果川縣)’이 되면서 현감이 다스리는 고을이 됐다. 우리 과천 지역에 과일나무가 많아서인지 옛부터 밤나무 ‘율(栗)’과 실과 ‘과(果)’ 자가 이름에 포함돼 있다.

과천현 당시 영역은 오늘날의 과천시, 안양시, 군포시 거의 전부와 서울시 서초구 일대 및 동작구, 관악구의 일부가 포함된 매우 넓은 지역이었다.

이후 조선 고종(1895년) 때 군내면, 동면, 남면, 하서면, 상북면, 하북면의 6개면을 가진 ‘과천군(果川郡)’으로 관제가 개정됐다. 지금의 과천시 지역은 당시의 군내면을 중심으로 관문, 문원, 갈현, 하리, 막계, 내점, 외점, 교동, 가일의 9개 동리로 구성돼 있었다.

일제강점기(1914년)에는 군내면과 동면 주암리를 병합한 ‘과천면(果川面)’이 돼 시흥군에 편입됐다. 광복 후 1982년 6월 ‘경기도 과천출장소’가 됐다가 1986년 1월 1일 ‘과천시(果川市)’로 승격했다.

현재의 과천시는 동쪽으로 성남시(청계산), 서쪽으로 안양시(삼성산), 남쪽으로 의왕시(매봉), 북쪽으로 서울특별시(관악산)로 둘러쌓여 있으며, 중앙동, 갈현동, 원문동, 별양동, 부림동, 과천동, 문원동의 7개 행정동이 있고, 여기에 관문동, 주암동, 막계동의 3개를 추가한 10개의 법정동을 갖고 있다. 인구는 약 8만명이다.

과천시의 면적은 35.87㎢로 우리나라 국토(100,214㎢)의 0.04%, 경기도 면적(10,167㎢)의 0.35%를 차지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이 29.75㎢로 과천시 전체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과천시의 상징물로서 마스코트는 밤(栗)을 의인화한 토리와 아리, 시목은 밤나무, 시화는 철쭉, 시조는 비둘기, 시동물은 말이다.

온통 고층 아파트로 변해버린 오늘날 과천의 모습
과천위버필드 아파트에서 바라본 건설중인 건물이 많은 안양쪽 지식정보타운 방향의 모습
5층짜리 주공아파트가 3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로 재건축되어 아름다운 모습이 많이 가려진 청계산과 과천매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