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도시의 기억을 지키는 조용한 불빛, 과천학연구소

도시의 외형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지만, 그 안에 깃든 시간과 기억은 기록이 없으면 속절없이 사라진다. 빌딩 숲으로 변해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과거의 삶과 흔적을 붙잡으려는 움직임은 대개 너무 작고 조용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경기도 과천에서는 27년째 묵묵히 그 일을 해오고 있는 한 단체가 있다. 바로 과천문화원 산하 ‘과천학연구소’다.

1997년 ‘과천향토사연구회’로 시작해 2005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편된 이 연구소는, 도시가 잃어버린 시간을 수집하고 되살리는 일을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이어오고 있다. 역사학자, 교육자, 전직 공무원, 번역가 등 27명의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과천의 역사와 문화를 학문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들이 완역·출간한 ‘우산집(愚山集)’은 과천이 낳은 조선 후기 유학자 신종묵 선생의 시문집이다. 한문으로 쓰인 고전을 2년에 걸쳐 해석하고, 역사적·문학적 해설을 더해 책 한 권으로 엮어낸 일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도시의 자산을 되살리는 고된 복원 작업이다. 지금 시대의 눈으로 보면 불필요하다 느껴질 수 있는 이 노고는, 사실 미래 세대에게 과천의 ‘정체성’을 남기는 작업이다.

올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술사 사업’에 착수했다. 신도시 개발 이전의 기억, 행정구역 개편 전의 마을 풍경, 과거 주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담아내는 이 사업은, 도시 개발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시도다. 연구소는 이 기록을 학교 교육 콘텐츠로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기자가 인상 깊게 본 건 이들의 ‘열려 있는 태도’다. 시민 누구나 강의나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며, 지역에 관심 있는 이라면 전문학자가 아니어도 과천학에 함께할 수 있다. 김소화 사무국장의 말처럼, “과천학은 시민이 만드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기록’은 단지 옛날이야기를 모으는 일이 아니다. 지금 여기 사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비추는 등불이다. 도시가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릴 때, 정체성도 함께 무너진다. 그런 점에서 과천학연구소는 단순한 지역연구단체가 아니다. 과천이라는 도시가 스스로를 잊지 않도록 불을 지키는 작은 등대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도시를 위한 가장 빛나는 노력이다.

박창용 기자
박창용 기자
국가 공기업에서 39년간 근무하고 정년퇴직 하였습니다. 오랜 행정경험을 토대로, 2024년 4월부터 시니어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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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과천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곳이 있다는것을 신문을 통하여 알게 되면서 새삼 놀라게 되었고 이를 알리는 노력하는 분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 역사적 보존가치와 과천학에 중요성을 게시글을 통하여 다시금 상기 시키게 되었습니다.

  2. 무엇이든 급변화 하는 시대에 과천에 변화 모습을 자료화 하여 역사적 보존과 가치를 알리고 연구하는 과천학연구소가 있다는것을 신문을 통하여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과천시 새로운 소식을 게제 해주시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구독과 카페 가입 했습니다. 이사를 해도 멀리서도 소식을 받아볼수 있어 더욱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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